대화운동은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화란 상호이해의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비록 견해가 다르더라도 공동의 언어(Common Language)를 찾아가는 것이다.


흔히 ‘대화의 모임’으로 잘 알려진 여해와 함께의 대화운동은, 반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그때그때 사회 각계각층의 쟁점이 된 이슈를 내걸고 해당 분야의 인사들을 초청, 대화를 나눔으로써 분열과 대립의 원인을 찾아왔다. 시작은 1957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강원용 목사가 교회의 사회공헌이란 꿈을 갖고 만든 아주 작은 모임이다. 15명의 인원으로 출발한 초창기에는 회비 1백원에 70원짜리 국밥을 먹으며 광범위한 사회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처음에는 신학자와 사회과학자간의 대화부터 시작했다. 작은 그룹의 대화운동은 차츰 폭이 넓어져 1962년 온양에서 ‘새로운 형태의 봉사와 참여’라는 주제로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모여 4일간의 대화를 하는 데 이르렀다. 이후 연 20여회 가량 열리는 대화모임이 이어졌다.

초창기 대화운동의 시도에 대해 국내외 반응은 매우 비관적이었으나, 여해와 함께는 종교간 및 파간 대화, 노사간의 대화, 여야간의 대화, 세대간의 대화 등을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대화를 통한 새로운 소통과 창조가 가능함을 증명하고자 했다. 대화는 사회여론을 환기하고 참석자들에게 대화의 참뜻과 멋을 체험케 함으로써 큰 호응을 받았다. 대화의 내용 역시 매스컴을 통해 사회 전체에 소개되는가 하면 때로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대화의 모임’의 맥은 근대화, 인간화, 양극화, 정치화와 민주화, 중간집단육성, 민주문화 공동체 형성, 생태적 패러다임에 기반한 녹색화 등에 닿아있다. 대화의 초첨은 언제나 한국사회의 현실적 당면 과제였다. 대화운동의 흔적을 돌아보면 이 사회가 걸어온 아픔의 길을 더듬어볼 수 있다.

지난 50여년 동안 한국교회의 개신을 통한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활동해온
대화운동의 주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1962년부터 1968년까지는 ‘근대화(Modernization)’를 주제로 근대화 과정에서 물량적이고 가시적인 발전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다.
  • 1969년부터 1970년까지는 ‘인간화와 양극화(Humanization and Polarization)’에 초점을 맞춰 빈과 부, 도시와 농촌, 구세대와 신세대 등으로 단절된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는 데 주력했다.
  • 1971년부터 1973년까지는 ‘정치화와 민주화(Politicization and Democratization)’를 주제로 민주적 균형이 깨진 상의하달식 정치구조를 민주화를 통해 치유하자는 논의를 진행했다.
  • 1974년에서 1979년까지는 ‘중간집단교육(Education for Intermediary Groups)’이라는 주제로 중간집단 형성에 초점을 두었다. 한국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양극 집단 사이에서 화해와 조정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집단을 양성하자는 취지였다.
  • 198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는 ‘민주문화 공동체 형성(Formation of the Communities of Democratic Culture)’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창조적이며 생명력 넘치는 민주적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를 형성해 감으로써 공동체성 회복에 기여하고자 했다.
  • 1990년대 들어 여해와 함께(크리스챤아카데미)는 지방자치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를 줄지어 앞두고 있는 당시 한국사회를 ‘전환기의 한국사회’로 진단했다. ‘90년대 한국사회와 민간운동의 방향’ ‘지역정치와 유권자의 책임’ ‘전환기 한국정치와 유권자의 책임’ ‘전환기 한국정치와 교회의 책임’ 등 주로 민(民)의 역할에 무게를 둔 삶의 정치를 주제로 한 대화모임들을 진행했다.

  • 2000년대를 맞아 문명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점차 이질성이 심화되어 가는 오늘날, 생명가치를 중심으로 한 화해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대화운동을 새롭게 전개해나가고 있다.
형형색색의 이데올로기 간의 무가치한 투쟁에 의해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의 이 분열된 현대세계에서 우리는 대화의 형식을 창조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공동체로 창조된 우리들의 인간적인 상호관계의 영(靈)은 언어에 의해 표현된다. 인간이란 ‘생명의 언어’를 가진 존재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살아있는 실체’인 것이다.
서로 간의 이야기가 없이는 인간상호는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공동체는 이뤄질 수 없다. 서로 대화함으로써만 우리 자신을 표현하고, 서술하고, 타인에게 알리고, 또 자아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알베르트 C. 오틀러 Vom Streigesprach zum Dialog 중에서



말하는 존재로서의 사람은 홀로 독백하는 존재가 아니고 대화하는 존재다. 말이 창조의 능력을 가진 것도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언어는 대화요, 대화는 서로의 이해를 깊게 해 하나를 만드는 힘을 가진다. 그러나 사랑이 단절될 때 대화가 단절되고 대화가 단절되면 일방적인 선입견과 편견이 생긴다. 그럴 때 언어는 사랑의 속삭임이 아니라 헐뜯는 힘으로 나타난다.
사회를 지배하는 언어는 그 사회의 건강을 진단하는 척도가 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화해의 성취 역시 곧 언어의 정상화, 진실한 대화를 통해 사회 안에서 구현될 수 있다.

-강원용-



대화의 모임의 특징은 그룹의 생활 속에서 어떤 정점을 찾아 모은다는 것이다. 즉 집단이나 그룹, 더 크게는 사회전반에서 제기된 문제가 대화의 주제가 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찬반의 의견대립이 있다. 이 경우 격렬한 논쟁이 붙기도 하며 상대의 의견을 분명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대화의 모임은 사회 구조 속에서 그 그룹의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임은 언제나 일정 부분 정치적인 성격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대화모임은 그룹으로 하여금 전체 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자기 역할을 찾고, 상대 그룹의 이익을 이해하면서 자기 그룹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한다. 때로 이러한 대화과정 속에서 견해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경우가 있으며,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경험은 언젠가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기도 한다.

대화운동은 ‘대화’라는 새로운 소통양식을 이 땅에 처음 소개했다. 이것은 숙식을 같이 하며 더불어 진리를 찾아가던 희랍 철학자들의 대화전통과 양식과 맥을 같이 한다. 그 안에는, 견해가 ‘다름’은 곧 ‘배제’라는 악순환을 깨뜨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 이상의 실현은 우리 사회 전체에 대화의 풍토를 조성하고 적절한 대화 양식을 체득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